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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발달장애 음악형제의 성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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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8-09 15:17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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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발달장애 음악형제의 성장 이야기

임선균·임제균 어릴 적 음악치료 통해 ‘절대음감’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 활동, 연주 실력 입증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8-03 11:23:29
임선균, 임제균 형제.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이블포토로 보기 임선균, 임제균 형제.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장애 발견

임선균, 임제균은 23세의 쌍둥이다. 쌍둥이에게 자폐증이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은 엄마였다. 보통 발달장애는 엄마보다 주위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곤 하는데 쌍둥이 엄마는 발달장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고, 첫 아이였지만 또래 아이들과 뭔가 다르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엄마는 두 살 된 쌍둥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를 찾았는데 이상하게 쌍둥이는 의사선생님에게 반응을 보였다. 진단 결과는 정상이었다. 엄마는 내심 너무 기뻤지만 의심이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TV에서 자폐성 발달장애아 얘기가 소개되었는데 그 아이의 행동이 쌍둥이 아들의 행동과 똑같았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엄마와 손도 잡지 않으려고 하고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반복행동을 계속하고… 엄마가 그때 스스로 장애 진단을 내리고 확인차 병원을 다시 찾았다. 그제야 비로소 자폐성 장애 판정을 받았다. 선균이가 2급, 제균이가 3급이었다.

장애 지우기

25세에 쌍둥이를 낳아 아이들의 발육이 보통 아이들과 달라서 4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던 엄마는 장애 판정을 받고 난 후 치료에 매달렸다. 언어치료, 운동치료, 놀이치료 등 일주일 내내 치료실을 순례했다.

한달 치료비로 수백만 원이 지출되어 월급쟁이 아빠가 감당하기에는 벅찼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빠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지원자 역할을 해 주었다. 그렇게 치료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것은 쌍둥이에게 덮어 씌워진 장애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쌍둥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장애가 지워지지 않으면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소망과는 달리 쌍둥이는 더욱 이상 행동을 보였다.

과일 주스를 만들어 주기 위해 믹서기를 사용하면 소리를 질렀고, 지하철역에서 전동차가 들어오면 불안해서 난리를 쳤다. 미용실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믹서기 소리, 전동차 소리, 바리깡 소리 등 소리에 예민했기 때문이었다.

규니브라더스.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이블포토로 보기 규니브라더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런저런 치료를 받다가 음악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다른 치료와는 달리 아이들이 즐거워하였다. 그때는 솔직히 즐거워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잘 순응해서 엄마가 좀 편해서 좋았다.

선생님이 건반을 누르고 ‘이게 뭐지?’라고 물으면 ‘파’ 이런 식으로 계명을 알아 맞추었다. 엄마는 속으로 ‘쟤들이 어떻게 알지?’라며 의아해했다. 음계를 가르쳐 준 적도 없거니와 가르쳐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선균이와 제균이에게 절대 음감이 있어요. 음악을 가르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요.” 엄마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엄마는 아이들이 못하는 것만 골라서 치료랍시고 가르치며 비장애아이들처럼 하라고 강요하였지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엄마면서도 무의식 속에는 타인들처럼 우리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일단 피아노를 시켰다. 그때가 7세였다.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어했고 따라서 교육 효과도 좋았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무슨 악기를 가르쳐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큼 갖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쉽게 연주할 수 있고, 귀가 예민하기 때문에 귀에 대고 하는 현악기보다 입으로 부는 관악 기가 좋겠다는 판단으로 선균이는 플루트, 제균이는 트럼펫을 배우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랑의 교회’에서 발달장애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게 되어 쌍둥이는 ‘사랑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입단을 하였다.

장애물 경기를 하듯

“아니 어쩌다 아이 둘이.” 엄마는 이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살았다. 장애아 하나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아이 둘을 한꺼번에 돌봐야 하기 때문에 두 배 이상의 노력과 두 배 이상의 편견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엄마가 우리 사회 속에서 겪은 차별은 두 배보다 훨씬 많고도 심했다. 정말 강심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시선 때문에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말하고, 더 크게 행동했다.

남들 눈에는 엄마도 이상해 보였을지 모른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엄마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도록 통학을 쌍둥이 형제끼리 하도록 하였다. 불안하기는 하였지만 혼자가 아니고 둘이어서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었다.

가족사진.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이블포토로 보기 가족사진.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균이가 여학생 가슴을 만졌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사과를 하거나 무조건 우리 아이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부정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선균이에게 엄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 얘기를 하며 그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교실 문에서 나가고 들어가다가 서로 부딪혔는데 선균이가 ‘미안해.’라고 말한 것이 가슴을 만진 것을 시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선균이가 스킨십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직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아서 자신있게 아들을 대변해 줄 수 있었다. 결국 그 사건은 엄마의 설명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것이 고등학교 진학을 남학교로 선택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성남고등학교는 특수반이 없었지만 쌍둥이 형제를 받아 주었고, 교감 선생님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물으실 정도로 친절하였다. 그런 관심에 아이들도 자신감이 생겨서 학교생활을 아주 잘 하였다.

다르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쌍둥이 형제는 서로 대화를 잘 하였다. 엄마는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형제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그들 대화가 일반 대화가 다른 것이 있다면 반응을 기다려 준다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들과 비장애인의 대화의 장벽은 그들의 발음이 어눌해서가 아니라 바로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쌍둥이 형제는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다. 엄마가 이해를 못하면 이렇게 말한다. “엄마랑 세계가 달라요.”

이상 행동을 지적하면 “불안해서 그래요.”라며 이유를 설명하였다. 각자의 세계가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너무나 잘 알아서 생기는 불안감도 있다. 연주할 때와는 달리 무대 등퇴장 또는 인터뷰를 할 때 유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아이들도 무대 위에서 긴장을 한다.

한번은 제균이가 무대에서 내려와 “너무 떨려서 개다리춤을 출 뻔했네.”라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실수 없이 잘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하는 것이다.

엄마를 더욱 놀라게 했던 일은 바로 형제간의 경쟁 관계였다. 쌍둥이 형제는 6세 때 심리치료도 받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엄마 혼자 상담실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어머니, 선균이가 동생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며 좀 위축되어 있고 불안증상이 있어요.”

그제야 엄마는 항상 쌍둥이 형제를 비교하는 화법을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균이는 하는데 선균이는 못해요.” 이런 식으로 선생님들에게도 말했고, 가족들에게도 “제균이가 했어요.”라며 제균이 자랑을 하였다.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것을 해낸 것이 너무 신기해서 주위에 알렸던 것인데 선균이한테는 상처가 됐던 것이다. 선균이도 나중에는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칭찬을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균이는 동생에게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날이면 “엄마, 나도 옆에서 들으면 안 돼요?”라며 신경을 썼다. 어려서 또는 장애 때문에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교하며 말했던 것이 선균이한테 그런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반성을 많이 했다.

좌-리틀 빅 히어로 출연, 우-스페셜올림픽 어워드.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이블포토로 보기 좌-리틀 빅 히어로 출연, 우-스페셜올림픽 어워드.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교육의 힘

초등학교 때는 알림장을 봐야 엄마가 집에서 자녀를 지도할 수 있다. 어느 날 알림장에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왜 알림장에 선생님 과제를 써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엄마가 선생님과 통화해 보세요.”라는 것이었다.

알림장 적는 일은 엄마가 하는 일이 아니고 학생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엄마는 아이를 학교에 다시 보내 선생님께 여쭈어보고 적어 오도록 하였다. 그 후 아이들은 알림장 쓰기를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돈을 쓰는 방법도 혹독하게 가르쳤다.

한 달 용돈으로 3천 원을 주자 바로 슈퍼로 달려가서 3천 원어치 과자를 사 와서 한꺼번에 먹어치웠다. 엄마는 다음 달 용돈을 줄 때까지 과자를 절대로 사 주지 않았다. 과자는 3천 원으로 조금씩 조금씩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보도록 하여 8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이 자격증을 따서 어디에 쓰겠느냐고 하지만 엄마는 우리 아이들도 준비를 하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쌍둥이 형제는 고등학교까지는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대학 진학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리고 꼭 대학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있도록 진학을 권했다.

그래서 선균이는 한예종에서 낙방한 후 백석대학에 입학을 하고 제균이는 직장이란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해 주었다. 복지일자리로 육아지원센터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아주 적응을 잘 하였다.

발달장애인의 사무직 도전이라서 의미가 있었다. 사무직 근무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컴퓨터 관련 자격증 덕분이었다. 제균이도 1년 후 한세대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선균이를 먼저 대학에 보낸 것이 선균이에게 있던 동생에 대한 경쟁심리를 버리고 자신감을 회복하게 만들었다.

그런 자신감이 실력을 향상시켜 백석대학 2년을 마친 후 한세대학교 일반전형으로 3학년 편입에 성공하였다.

진로 고민

쌍둥이 형제는 많이 성장했다. 전공에 대한 욕심도 있고, 경제 개념도 생겼으며 스스로 통학 하고 친구들과도 소통할 줄 안다. 엄마는 열심히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이다.

쌍둥이 형제가 전공을 살려 자립하여 살아가려면 예술 활동을 하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몸 담고 있는 ‘하트하트오케스트’라도 매년 오디션을 통해 단원 계약이 이루어진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 요건이 25세로 되어 있다. 사정을 하면 30세까 지는 어떻게 해 본다 해도 그 이후는 불가능하다.

발달장애인 음악인들이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다. 엄마의 가장 큰 걱정은 연주 기회가 줄어들다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음악 활동을 계속 시키는 것이 옳은 길인가 하는 갈등이 생긴다.

엄마, 아빠가 늙어서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돌봐줄 형제도 없다. 쌍둥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느라고 아기를 가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난 3월에 서울튜티앙상블 주최의 휴(休) 콘서트 시리즈로 ‘임선균·임제균의 음악선물’이 있었다.

선균이는 플루트로 플랑의 ‘플루트 소나타’와 보네의 ‘카르멘 판타지’를 연주했고, 제균이는 트럼펫으로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과 텔레만의 ‘트럼펫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수준 높은 연주 실력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콘서트 마지막 곡으로 아르방의 ‘플루트와 트럼펫을 위한 베니스의 사육제’를 연주하자 관객 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브라보, 브라보!’를 연호했다. 관객들은 무대 위의 연주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잊었다. 그저 감성적 해석으로 연주한 음악에 매료됐던 것이다.

이렇듯 선균과 제균이가 좋아하는 음악이고 점점 실력이 향상되고 있어서 엄마의 고민은 더해지지만, 무대 위에서 어려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 내는 쌍둥이를 보고 행복한 엄마이기에 엄마는 쌍둥이 형제의 음악 인생을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할 것이다.

좌-한국장학재단주관 독일연주, 우-유엔세계장애인의 날 초청연주.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이블포토로 보기 좌-한국장학재단주관 독일연주, 우-유엔세계장애인의 날 초청연주. ⓒ한국장애예술인협회
# 임선균

한세대학교 음악학과 3년 아트위캔 플루트앙상블 단원
한세대학교 음악학과 2년 하트 브라스앙상블 단원

2012. 서울 오케스트라 금관 중등부 3위 2014.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재원 수료
2013. 국제청소년회관 연주 2013. 호산나오케스트라와 협연 2013. 대한민국 사회공헌 시상식 연주(국회회관) 2015. 밀알들의 음악회 연주 2015~16 투게더위캔 북까페 콘서트 연주 2016. 한국장학재단 주관 독일 베를린. 아이제나흐 등 에서 버스킹 외.
2014. 튜티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 2014. 대한민국 사회공헌 시상식 연주(국회회관) 2016 UN 세계장애인의 날 초청 연주 2017. 스페셜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출정식 연주 외 다수의 연주

# 임제균

2011. 전국음악경연대회 금상 2012. 뽀꼬아 뽀꼬 우수상 2016. 예음 클래식 음악 콩쿠르 대학부 입상 2016. 전국학생음악 장학 콩쿠르 대학부 입상 2016. 스페셜K 입상

# 임선균&임제균 공동 경력

현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 2013. MBC스페셜 위대한탄생 재능상 2016. 스폐셜올림픽 우수 아티스트상

2012. 사랑나눔 위캔 썸머 뮤직 캠프 참가 2013. 올림픽 파크텔 연주 / 2013~14. 투게더위캔 송년음악회 출연 2013~16. 평창 스폐셜 뮤직 아트 페스티벌 참가 2014. 국제청소년 센터 연주 / 2014. 스페셜 뮤직 폐막식 연주 2014~17 튜티 휴 음악회 연주 / 2015~17 열린 음악회 연주 2016. 코리아나 호텔 자선 음악회 연주 / 2017. 야마하 홀 연주 2018. 임선균.임제균의 음악선물 콘서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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